손흥민은 차범근, 박지성을 잇는 한국 축구계의 스타다. 이들에게는 모두 아들들에게 헌신한 아버지들이 있었다. 차범근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새벽이면 아들을 깨워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타게 했다. 차범근의 허벅지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박지성의 아버지 역시 몸집이 작고 체력이 약했던 지성에게 개구리를 숱하게 고아주었다.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은 축구선수 출신. 흥민에게 시합을 아예 뛰지 못하게 하고 체력단련과 기본기를 충실하게 연마하도록 했다.
그 아버지 손웅정은 책도 썼다. 엊그제인 2024년 4월 1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출간 간담회가 열렸다. 난다 출판사 김민정 시인이 묻고 답한 형식이다. 출판인 편집인의 힘이 책을 만든다. 그들은 함께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를 펴냈다. 그 안의 몇 가지 인사이트들. 나는 아직 책을 읽지 않았고, 아래 내용은 신문기사를 통해 얻은 것들이다.
1. 손웅정은 책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하는 모양이다.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읽어야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다섯 수레쯤 되는 책을 무릇 읽을 수 있겠다. 손웅정은 구양서의 말을 인용했다. 마상, 측상, 침상. 말위에서(현대엔 지하철 등 이동수단 위에서), 측간(화장실)에서, 그리고 침대(잠자리)에서도 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어야 1년에 300권쯤을, (좋은 책은) 세 번 씩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게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다 변명”이라고 경향신문은 제목을 달았다.
2. 송웅정은 읽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읽은 것을 써서 남겨두었다. 그가 쓴 독서노트에 미국의 신학자 피터 라이브스의 글귀.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순 없다.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 없다. 시계를 살 수 있으나 시간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었도 지혜를 살 수는 없다. 지위를 살 수 있어도 존경을 살 수는 없다.”
책을 읽고 지식을 얻은 뒤, 그 내용을 거듭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제대로 적용하면서 다시 이 구절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 부를 법하다. 그걸 “미래를 여는 열쇠”로 불러도 좋고,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됐다.”고 해도 좋다. 한국일보는 [손웅정, “삶의 지혜는 독서… 책읽는 모습만도 교육”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3. 종으로도 공부하고, 횡으로도 공부하는데, 더 중요한 건 종(縱)이라고 하는 데 동의한다. 예를 들어 위아래로 쫓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고, 횡으로 공부하는 것은 사회학을 하는 것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은 물을 마심에 그 원천을 생각한다는 것인데, 같은 말일 것이다.
손웅정은 아들 손흥민이 독일 함부르크로 축구 유학을 떠날 때는 독일 역사서를 보았고, 2015년 영국 토트넘으로 이적했을 때는 영국 역사서를 보았다 했다. 외국으로 떠나면서, 그 나라 역사를 공부하고 가는 이가 있을까? 있다면 그는 현지인들과 사귀는 여행을 할 가능성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고 가면 더욱더. 그러지 못하면 그저 돌아볼 뿐일 게다. 손웅정은 자신의 20대후반 독서여정이 자기개발서로 채워졌었다 했다. 이후로는 리더론 그리고 요즘은 ‘좋은 노후’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단다. 그의 독서이력도 하나의 작은 역사다. 중앙일보는 [손흥민 아버지의 조언 “친구 같은 부모? 직무유기]라고 타이틀을 달았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넘어가는 훈육과 기준의 제시 역시 횡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종적인 것이다.
4. 기타. 그리고 몇 가지를 더 소개하자면.
책 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에 손웅정은 “각자 기호가 있어서….”라면 답을 피한 모양이다. 그러는 중에도 하나 권한 책은 사마천의 『사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살았던 이야기를 모은 책. 오랜 동안 살아남은 고전.
그의 책이 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시인이자 출판인인 김민정이다. 그녀는 ‘기획의 달인’이라고 별명이 붙어있다. 출판사 난다의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회사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런 것이다.
“한다─간다─난다! 난다는 ‘깊이 있는 이야기의 감각적 무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책 본연의 기능성과 가능성을 뛰어넘어 예술이 될 수 있는 책, 우리 문학과 문화의 동네에 역사로 남을 수 있는 책을 꿈꿉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름이란, 자기 이름만이 아니다. 그저 펼쳐져있는 세상을 우리는 이름을 통하여 비로소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된다. 자연법칙에 붙은 'E=mc2은 이름이다. 황석영이 쓴 장편소설 『장길산』도, 『철도원 3대』도 이름이다. 남아서 후대에 보여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시간을 넘어 살아남는 방법이다. 지속할 수 있는 생각, 그것은 이름으로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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