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총소리가 빗발치고 최루탄이 눈과 코를 괴롭히며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수십수만 명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1980년의 5월 18일은 모든 국민들에게, 특히나 광주 시민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지웠다. <소년이 온다>는 모두에게 아물지 않은 그날의 이야기를 적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동호는 당시 15살, 그저 어리기만 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5•18의 비극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또한 지극히 무차별적으로 잔인했다.
나이 차이도 몇 나지 않을, 수많은 군인들의 총길 속에서 한 총알은 우연찮게도 수많은 인파 중 내 친구 정대의 옆구리를 거칠게 비집고 들어갔다. 그대로 끝났더래도 나쁘지 않았으련만 애석하게도, 그때의 차갑고 날카롭던 세상은 어린 우리를 봐주지 않았다. 은빛으로 눈이 멀도록 반짝이던 쇳덩이가 정대의 빨간 눈물을 뒤집어 쓴 채 세상으로 나온 순간, 정대는 쓰러졌고 나는 도망쳤다. 누나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은 후였다.
이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말도 소리도 뱉어낼 수 없었다. 마치 무심한 총알처럼, 아니 그보다도 차갑게 식어가던 그 손을 놓쳐버린 사람은 동호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에도 양심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던 동호는 놓쳐버린 그 손을 마주 잡기 위해, 일말의 희망이 있을 지 모르는 손에 온기를 나눠주기 위해 상무관으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생명줄이 타들어가는 냄새와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사람들의 통곡 소리에 괴로움을 자아내는 동호지만 하루하루 버텨내며 정대를 찾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동호의 손은 짝을 찾지 못하고, 이를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그때의 차가운 총칼은 다시 한 번 동호를 덮친다.
"여섯 시면 문 닫는대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황급히 달려온 엄마에게 동호가 전한 마지막 말은 '사랑해'도 '미안해'도 '고마워'도 아니었다.
마지막까지도 양심을 버리지 못한 인간, 동호와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꽃봉오리조차 피우지 못한 채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 다만 확신한 것은 그 꽃봉오리의 존재가 지금의 나비를, 벌을,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는 것, 욕구보다 양심을 더욱 중요시 여긴 사람은 한 나라의 고위직이 아니라 그저 단지 어린 학생들과 무고한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날을 기억하며, 지금을 반성하고, 앞으로를 곧게 나아가야 한다. 허나, 인간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 존재이기에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처럼 다시 말끔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겨진 종이로나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행기를 접어 하늘로 날려보내야 하고, 꽃을 접어 그날의 봉오리를 기억해야 하며, 사랑을 접어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잔인성은 유전자에 새겨진 듯 그날부터 현재까지 짙게 이어져 왔지만, 양심 또한 가슴 속에 새겨져 또 다른 꽃봉오리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그 가슴 속 하얀 응어리를 지닌 봉오리들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송서현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