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고구마] 40년 묵은 헌책방 <고구마>가 닫히면

헌책방 고구마는 다양한 '책생'들의 거처요 정거장이었소. 범순 지기 수고하셨다

원동업 승인 2024.02.12 12:49 의견 0

40여년쯤 운영되어온 헌책방 <고구마>를 매매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언제고 책과 가까이 있고 싶었던, 청년 범순은 그래서 금호동 산동네에서 헌책방을 연다. 그 이범순 사장님이 이제 정말로 은퇴를 할 작정이신 게다.

고구마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팔달면에 위치해 있다. 12~13년전쯤에,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 내가 만났던 그 헌책방은 그때 쯤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금호동에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재개발이 되면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내가 2000년대 후반쯤 그곳을 찾았을 때, 그곳은 대경상고 올라가는 큰길가에 있었다. 내리막길에 상가를 몇 개나 이어서 운영하고 있는 그곳은 마치 고구마를 땅속에서 캐낸 모습을 닮았더랬다. 그래서 고구마인가 했는데, 주인장의 이야기는 이랬다.

“고구마는 서민적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때문”.

책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헌책방은 사람들의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던 구황작물이었던 때문이라고. 혹은 1980년대 전라도의 농사꾼이 “아이가 교과서를 잃어버렸는데, 구할 길이 없다”고 하소연하며 매장을 찾아왔을 때, 그가 수소문 끝에 구해준 일이 있었다. 농부는 손수 지은 고구마 한 박스를 다시 보내주었기 때문에 고구마이기도 하고.

2020년도에든가? 화성 고구마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10여년 전 함께 내려갔던 직원들(문화사업의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직원들은 아무런 문화시설도 없이 뎅그러니 놓여있는 시골 구석의 이 책방들을 견디기 어려웠고, 이범순 사장 역시나 그들을 잡기 어려웠다) 오래도록 바꾸지 않은 마스크를 쓰고, 책먼지를 뒤집어쓰고, 이범순 사장은 30만여 권의 책들 사이에서 머물렀었다. (한때는 100만 권에 달하기도 했었더랬단다)

2024년초의 헌책방 고구마는 누구에게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르겠지만 헌책방 <고구마>를 운영했던 젊은 시인을 꿈꾸었던 선생의 뜻은 헌책방들과 함께 남을 것이다. 누구는 예스24나 알라딘 헌책방의 전신같았던 인터넷 검색과 주문의 뜻도 기억할 것이다. 30만권 가까이의 다양한 책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던 선생의 책 분류법도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 금호동에는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책방이 있다. 이곳 대표 박성민 씨는 이범순 선생과 함께 일을 했었다. 말하자면 고구마의 직원이었다. 그는 이범순 대표와 많은 것이 닮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고, 먼 북쪽 바다를 꿈꾸었다. 그들이 늘 건강 강건하시길 빈다. 책들도 안녕하여 원하는 이들과 만나기도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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