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슬픔은 발효중>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상실한 이의 치유와 성장의 여정

매일 서른다섯 명이 죽는다. 남겨진 자살생존자 백 사람에게 전하는 공감의 위로

원동업 승인 2024.02.14 01:50 의견 0

통계청이 집계한 한국의 사망원인 통계 중 자살은 2022년 12,906명이었다. 일 평균 자살자수는 35.4명. 인구 10만명 당 25.2명이다. 자살생존자는 자살을 시도하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자살로 인하여 남은 가족들이다. 그들도 매해 10여만 명씩 생길 수밖에 없다. 자살자는 가면 ‘끝’이지만(끝을 보려고 자살하겠지만), 자살생존자들을 그 이후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 속에서 남은 생을 살게된다.

어쩌면 많은 문화권 내에서 자살은 터부시되겠지만, 한국의 문화 안에서도 자살은 죄악이며 피해야할 일이다. 따라서 자살은 말해지지 않고, 그럼으로서 자살생존자들은 추모의 기회를 잃게 된다. 수치와 분노 안의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 이것을 무엇으로 불러야 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이야기되지 않는다면, 그 일을 처음 당하는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러므로 이 책 《슬픔은 발효중》은 독보적이고, 소중하다.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었던 저자 박경임의 자살생존자로서의 경험들이 이 안에 진솔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북콘서트에 초대되어 간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있는 저자의 포스터를 보았는데, 그건 슬픔이 발효되면서 익었기 때문일 거였다.

저자 박경임 님은 후후글방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다. Ⓒ 조은자


더구나 박경임은 그렇게 엄마와 오빠를, 사랑하는 이를, 탁월하여서 언제고까지 응원하고 싶었던 이를 잃은 뒤에 더 이상 그렇게 사람을 잃지 않도록 깊은 사랑을 주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현재 ‘상실과 애도 상담연구소’를 맡고 있는데, 자신과 같은 사람과 함께 곁에서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박사과정을 거치며 그 공부를 지속하는 것도 그들 곁에 제대로 있고자 해서다.

이 책이 미덕인 것은 글이 가진 어려움, 그러니까 대화 중에는 물어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미리 꼼꼼하게 챙겨서 이야기해 준다는 점이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그 일들을 통해서 다시 어떤 일들이 일어났으며, 그런 일들이 무슨 의미인가를 진솔하게 밝힌다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다짐과 결심이 필요했을 일. 그것을 그에게 심어준 것은 다시 사람들의 말이었다.

“자살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함께 슬퍼해야할 일”이라고 이야기해 준 것은 그를 가르친 스승의 말이었다. 오랜 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고통받던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어쩌면 혼나야 했을 ‘무단 외상’에 대해서 “오히려 아홉 살 짜리가 대단하구나!” 했던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시어머니는 어렵고 남편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 때, 학업을 응원해주고, “이 보약은 너만 먹어라! 경임아!”라고 사랑을 표현해 준 시아버지도 그녀를 지속적으로 충전해 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모질게 그 사진을 태운 시어머니는 남모르게 어머니와 갈등이 있었다. 그러한 다툼은 어머니가 약을 상추에 싸서 먹게 된 이유가 됐다. 새어머니가 와서 많이 배우지 못하게된 오빠가 그러저러한 이유로 사랑을 잃었을 때, 절망하는 이유가 됐다. 오랜 동안 절실하게 기도하던 엄마였지만, 그 교회에서 “엄마는 지옥 갔다!”고 했던 매정함이 오랜 동안 저자를 죽음같은 고통으로 내몰았다.

사랑의 말은 물처럼 사람을 살리고, 판단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말들은 사람을 여위게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대상에 전폭적으로 사랑을 준다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러한 존재가 가까울 때 대상은 삶의 끈을 놓지 않게된다는 것도 이 책이 하는 말이다. 일상의 연이라면 얻지 못하였을 책을, 기억하고 출판기념회에 가서 책을 구입해 나누어주신 조은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런 사랑이 있어 우리는 좁게 바로가 아닌 더 넓게 오래갈 사랑을 다짐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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