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피엔스] 우리는 책으로부터 지식만 얻지는 않으니, 온기와 방향에 집중하여야 한다

척박하기만 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온기를 전달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낭독모임에서 내가 발견한 공감과 지혜의 이야기들

원동업 승인 2024.03.13 08:54 의견 0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저>는 1부 인지혁명, 2부 농업혁명, 3부 인류의 통합에 이어, 마지막 4부 과학혁명 등으로 이어지고 15장은 과학과 제국의 결혼 부분이 나온다. 390쪽부터 우리는 읽어나간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재기 위해 과학자들이 사용한 방법은 태양의 일부가 금성에 가려지는 ‘금성의 식(蝕)’ 현상이었다. 동일한 ‘식’ 각기 다른 대륙에서 관찰하여 삼각측량법을 이용하면 태양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1761년에 과학자들은 시베리아, 북미,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의 식을 관찰했고, 그로부터 8년 후인 1769년의 식에서는 북구 캐나다와 캘리포니아까지 과학자를 파견한다. 동시에 남서태평양에도 천문학자를 보낸다. 동시에 이 막대한 인력의 파견에서 ‘천문현상’ 하나만 측정하는 것은 효율성이 없었기에, 일곱 개의 각기 다른 분야 과학자들이 동행시킨다. 이 항해자들로부터 막대한 량의 천문학, 지리학, 기상학, 동식물학, 인류학 자료가 쌓였다.

먼 항해를 할 때, 배의 선원들은 피로하고, 우울하고, 잇몸을 비롯한 연약 부위에서 피를 흘렸다. 열이 나고 황달이 생기며,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병에 걸렸다. 그 원인을 아무도 몰랐고, 어떤 치료법도 없었다. 1747에 전환점이 마련되어, 영국 의사 제임스 린드가 이들 ‘괴혈병’에 걸린 이들을 대상으로 대조실험을 했다. 민간요법인 감귤류를 먹게 하자 이들은 치료되었다. 이로서 대항해의 기반도 닦였다. 대항해 중에는 1831년 비글호도 있었다. 인도양, 태평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5년여간 해안을 샅샅이 뒤진 이 배에는 찰스 다윈이라는 젊은이도 타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와 함께 그는 역사가 되었다.

이들의 지리학, 기상학, 인류학, 천문학 자료들은 제국의 진출에 실질적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해군과 함께 호주를 ‘발견’했고, 태즈메니아와 뉴질랜드를 정복하고, 수백만의 유럽인들을 새로운 식민지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한번은 그들의 총칼로, 또한번은 그들이 가지고 간 바이러스로. 인류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이 태즈메니아 원주민 트루가니니의 시신을 보관하고 연구했다. 그녀이 피부와 머리카락이 2002년까지 매장되지 못한 채 영국 왕립외과대학에 있었다. 유럽인들은 죽음까지 원주민들을 따라갔다.

유럽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의 진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 인도, 이슬람의 페르시아 제국이 기술이라면 이들보다도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인들만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그들의 세계를 정복했다. 무엇이 달랐을까? 유럽인들은 스스로 말했다. “우리는 마음의 병에 걸려있다. 우리는 황금을 사랑하는 병에 걸렸다. 오직 황금만이 이를 낫게 한다.”고 말했다. 둘째,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했다. 가득 차 있던 세계지도는 빈공간으로 다시 그려졌다. 그 빈곳은 차츰 유럽인들의 언어로 채워졌다. 아메리카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탈리아인의 이름이다.

1492년 스페인으로부터 카리브해를 거쳐 남미, 지금은 멕시코쪽의 아즈텍 제국에 정복자 코르테스가 도착한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동물(말)을 타고 바람보다 빨리 달렸다. 번개와 천둥을 만드는 금속 막대와 칼과 갑옷으로 무장했다. 원주민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코르테스는 이들을 정복해야겠다고 애초부터 생각했다. 그는 원주민들을 속였다.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왔다.”고. 그들은 아즈텍의 경비병을 학살한 후, 왕을 포로로 잡았다. 모든 아즈텍의 귀족들을 속이고, 민중들도 속였다. 550명의 스페인인들이 대제국을 접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즈텍인들이 이들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 것이었다.

1532년 서구의 침략자들은 지금의 페루지역 잉카제국으로 넘어간다. 이곳 잉카제국민들 역시 이들이 누군지 몰랐다. 대학살이 옆에서 벌어졌는데도. 그래서 이들도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속인 다음, 노예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당하고 만다. 피사로는 겨우 168명의 원정대원만 있었음에도. 첫 침략자 코르테스의 악행을 본받고 더 발전시켜, 잉카의 지배자 아타후알파를 초대한 후 인질로 삼는다. 인질을 풀어주는 댓가로 두 개의 방을 가득 채울 보물을 요구한 뒤, 이를 관철시킨다. 그 다음 그는 제국을 정복해 가는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가른 것은 ‘알고 vs 알지 못하고’ 단 한가지였다.

물론 역사는, 비유럽 문화권이 이들 침략자들을 이해하고, 세계적 시야를 확보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유럽의 지배권은 약화된다.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알제리 게릴라들은 오히려 더 많은 부대, 더 기술적이고 경제적 우위를 점한 프랑스 부대를 물리친다. 북베트남이 미국을 물리친 것 역시 유사한 전략을 이용했다. 명분을 내세우고, 반제국주의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는 일.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트루가니니의 처지에 섰고, 함께 공분했다. 머리가 쭈뼛 솟은 건, 우리가 희생자의 처지였던 것을 상기했기 때문일 터였다. 우리의 평화로운 세계, 우리의 만족한 세계를 넘어 쳐들어오는 저들의 존재를 우리는 몰랐다. 그들이 가진 욕망, 기술, 전과도 알지 못했다. 우리들은 죽어간 남미 원주민들, 그 뒤를 이어 그 자리를 채운 아프리카 원주민 노예들의 신세와 비슷했을 것이다. 남의 나라 땅에 가서, 발자국을 내리자마자 “여기는 모두 우리 왕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가. 그러나 그의 말대로 된 것이 지난 삼사오백여 년간 우리들 사피엔스의 역사였다.

우리들은 잠시 서양의 문화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짚어보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1년여간 가 있을 때였어요. 그곳 현지인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묻는 거예요. 너네 한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있다. 통일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죠. 그들은 수업을 할 때, 교재가 없어요. 책을 지정해 주면, 그 책을 읽어왔다는 전제 하에 교수의 수업이 시작되지요. 다양한 많은 지식이 쏟아지면서 서로 질의 응답도 해요. 학생은 그럼 그 이야기를 스스로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요약해 가야해요. 교재가 없으니, 저는 거기 모범생 공책을 부탁해 달라해 읽었어요. 그곳 시험은 등수가 없어요. 패스 혹은 패일이 있을 뿐이지. 중퇴도 없어요. 언제든 자신이 배운 데까지 자격을 줘요. 언제든 와서 후를 잇기도 하구요.”

경쟁하지만, 그 경쟁이 무의미한 ‘등수’를 차지하는 데로, 혹은 100점을 맞는 것으로 힘을 쏟는 한국의 현실. 배움의 방법이 아니라, 그 결과만을 탐하는 태도로서는 힘을 가질 것 같지 않았다.

최재천 교수의 외국인 선생들도 생각이 났다. 논문을 쓰면, 거기에 새빨갛게 첨삭을 해주고, 학생을 불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손수 글을 봐주었다는 선생들. 학자로서,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들. 최재천 교수도 그들을 본받아 손수 피자를 구워 학생들을 먹였다든가. 배움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파리바케트 광고문(우리는 프랑스 이야기를 꽤 했는데)에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빵”이라는 광고문이 붙어있었더란다. 그걸 본 어린 아들 “엄마! 저 빵 누구나 먹을 수는 없어. 메뚜기랑 들쥐는 돈이 없어서 못 먹어!” 모든 생명에 대한 경계 없는 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우리는 살 수 있을까?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알파맘으로 살아야 하나? 베타맘으로 살 수 있을까? 거름망 없이 서구와 서구적인 것들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하는 우리들의 문화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걸 발견한 것이 오늘 마음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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