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을 곡우였다. 곡식에 내리는 비. 그 비는 전날인 토요일날 모두 왔다. 일요일 20일에는 바람이 제법 불었고, 그래서 땅이 말랐다. 하늘에 뭉게뭉게 회색의 구름이 덮여있었다. 일하기에는 좋은 날이었다.

오늘은 형의 차를 카풀하기로 했다. 남부순환로를 타고 동생은 독산동서 이곳 예술의 전당 앞 버스정류장에 닿을 예정이었다. 나는 남부터미널 지하철역에서 조금 걸어 그곳으로 가고. 그러면 형이 우리를 태우러 그곳에 일곱시 반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부지런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멈춰 섰다. 작은 트럭 분량의 책들이 길가에 버려진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무실이 이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이렇게 버려진 책들을 만나게 된다. 이 안에서 천천히 볼만한 책들을 고르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다. 오늘은 약속시간 때문에 빨리 골라야 했다.


차가 있었다면 이 책들을 옮겨 실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차에 타고 있었다면, 이걸 발견하지 못하고 갔을 터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 책들 중에서도 몇 권은 입양해 가기로 맘 먹었다. 어떤 책들을 고르나? 그런 때마다 설렌다. 도시 광산에서 금광을 캐내는 것처럼 그 일은 흥미롭다.

『매일 3분 생각』이란 책이 4권이다. 나는 4명의 형제들과 오늘 일을 가는 중이므로, 그들에게 한 권씩 준다면 딱 맞을 일이다. 이 책의 출판사는 학지사. 학지사는 믿을 만한, 심리학 관련 전문 출판사다. 어떻게 나는 이걸 알고 있나?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공감될 내용이 많은 책. 책을 만드는 김진한 대표는 160여 명이 일하는 학지사를 창립하고, 지금까지 키워온 사람이다.ㅏ


탄핵이 마무리된 4월 6일께(탄핵 선고는 4월 4일 있었다) 나는 헌번재판소 인근에 갔다. 그곳 배렴가옥서 열리는 건축 전시에 아내와 볼 일이 있었다. 나오는 길에 식사를 마치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갔다. 경비가 삼엄한 경찰차량들이 그곳 <아름다운 가게>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온 김에 ‘쇼핑’도 해야지 싶었다. 그곳 <아름다움 가게>서 골랐던 책이 김진한이 쓴 『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라는 에세이였다. (아내는 내가 그 책을 살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학지사 대표 김진한은,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면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일 거다.” 그래서 심리학 전문 출판사를 만들었다고 적혀있었다. 허투루 책을 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니 그 책을 골라도 아무일 없을 터였다.

책을 선물해 준 뒤, 계수 씨가 내게 물었다.

“이 책을 주웠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선물로 주신 건 아닌가요?”

나는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지사 책은 믿을 만한 책입니다.”

“그래도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하고는 책을 펼쳤다. 그리고는 제목 하나만 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 같네요.”

그녀가 펼친 장의 제목은 <가족사에서 분리되기>였다.

책은 전체를 조망하고, 글은 부분을 자세히 살펴준다. 360여개 쯤의 마음에 대한 정신의학자의 통찰을 담고 있는 책


그건 생각해볼 만한 주제였으리라. 펼치는 어느 장에서고 한번 생각해볼 만한 제목들이 떴다. 첫 제목은 <건전한 한계>였다. 두 번째 제목은 <자기 관리>. 제목 하나만 보고도 우리는 그 책이 무엇을 이야기했으리라고 짐작할 만큼, 심리학은 매일매일의 과제를 안겨준다. 매일매일 3분씩 생각하면서 우리는 새로 확인도 하고, 다시 점검도 하리라.

책은 책을 소개해준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