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김소희 관장(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에게서 작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문화기획자로 성장하려는 이들을 위한 강의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말했죠. “나를 성장시킨 곳은 동네도서관이었다.” 우리들 주변에도 작은도서관들이 있습니다. 그 도서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 우리 곁에 있을까? 그 강의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은 ‘정숙’하게 ‘공부’하는 곳?
“저는 동대문구 장안동에 살았어요. 그런데 주변에 도서관이 없었어요. 해서 남산도서관까지 갔어요. 새벽에 버스를 타고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번호표를 받아요. 그렇게 기다리다 문이 열리면 들어가요. 열람실 머리위에는 ‘정숙’ 이렇게 붙어있어요. 졸리우니까 머리를 책상에 대고 좀 자다가요. 매점에 친구들과 라면을 먹으러 가요. 올라와선 수학정석과 해법영어를 들여다보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그걸 다시 가방에 넣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제 딸이요. 고등학교 2학년때 성동구립도서관에 가는데, 딱 저랑 똑같이 하고 오더라고요. 참고서 갖고 갔다가 와서는 ‘잤어!’ 그러더라구요. 왜 우리의 도서관은 이럴까요? 정말 이건 도서관의 모습일까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국립 구립 도서관이 있어요. 그곳 장서는 23만권, 연간 이용자는 32만명이에요. 그럼 이 도서관의 연간대출 권수는 얼마일까요? 5,600권이 안 되었다고 해요. 그곳 이용자는 그저 공부를 하는 거예요. 취직공부를 하든, 수험공부를 하든, 그건 자신들의 성공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서들은 열람실을 없애자는 주장을 해요. 그런데 민원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도서관이 예전부터 그래 왔어요. 열람실에서 칸막이도 만들어주었잖아요.
그런데 이런 공간, 이런 문화가 어떤 걸 가져올까요? 거기에는 애를 업은 엄마들, 노동자들, 농민들, 할머니들 이런 분들은 올 수가 없는 곳이 되요. 도서관에서 소외되는 거에요. 도서관은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를 하는 곳이 된 거죠. 역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도서관이라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황제의 것이죠. 수도원의 책들은 종교의 것이고.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다아시의 서재는 귀족의 것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에 우리가 공공도서관을 갖게 된 걸까요?
도서관의 창시자들과 작은도서관 운동
공공도서관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와요. 우리가 잘 아는 명작 <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 이야기죠. 원작은 우리가 아는 이야기랑은 거리가 있어요. 그건 단순히 억울한 장발장, 은촛대를 훔친 도둑에 대한 용서로 끝나지 않아요. 거기엔 폭발할 수밖에 없는 혁명의 기운들이 있어요. 시대의 울분을 토하던 여러 장소가 있었어요. 노동자들은 선술집에서 모였어요. 자본을 모은 중산계급은 카페에서 모였어요. 루소 같은 지도계급은 살롱에서 모였어요. 살롱은 나중에 아카데미가 되죠. 어쨌든 이들은 모여서 새로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게 학교 대학이고 도서관이예요.
이들을 도서관 창시자들이라도 불러요. 그들이 도서관 선언이란 걸 발표했어요. 도서관의 비전문을 읽어볼게요
“지식과 해득력, 즉 교육과 정보는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고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모두에게 유용하다는 보편적 리터러시에 대한 제도적 필요를 공감한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 창시자들은 공공도서관의 비전을 빈민의 대학이라 한다. 빈민이란 육체노동자이며 부자들처럼 개인 도서관을 갖거나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공공도서관의 시작은 그러니까 가난한 자들의 것이고, 육체를 쓰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경쟁이 시작되고, 다시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그들이 다시 밀려났어요. 이러한 데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했던 이들이 미국의 사서들이었어요. 문턱이 높아진 관리 중심의 기존 도서관을 big 큰도서관이라고 불렀어요. 그 반대의 운동으로 스몰라이브러리 작은도서관이 생긴 거였어요.
- 2017년 9월 19일 김소희 관장의 강연 중에서
동네의 발 닿는 곳마다 이제는 작은도서관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있고, 자치센터에도 있고요. 북카페의 형태로도 있고, 어쩌면 수없이 우리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책방의 형태로도 있지요. 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만남과 강연도 그러하고요. 또 구석구석 동네의 작은 집에도 있습니다.
그 작은 공간을 ‘가치’로 채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건 어쩌면 농작물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인의 발걸음소리에 식물들은 자란다지요. 잘 기획하고 관리되는 큰 도서관의 서소비자 말고, 작은 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창조자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치가 깃든 작은도서관에서 이웃과 만나는 일. 그건 정말 우리들 삶의 혁명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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