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 현경쌤 曰

지나친 배려는 자만이에요

최현경 승인 2024.07.19 16:20 의견 0


긴 장마가 한창이다. 사무실에서 듣는 빗소리가 여유와 낭만을 불러주는 시간을 즐기는 요즘이다. 7월은 자녀에 대한 고민에 주름을 만드는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된다. 우선 1학기 기말을 마치고 맘에 안드는 결과에 늘어나는 한숨과 찾아오곤 한다. 2학기 9월에 고3은 수시지원을 앞두고 있다. 막막한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목마른 갈증을 해결하고자 연락을 주시기도 한다. 학부모를 졸업한 본인이 지금의 학부모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속했던 나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 같아 쓴소리는 혀 밑에 꽁꽁 가두는 배려를 하기도 한다.

속이 타는 것은 부모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얄밉게 보였다.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 뼈를 때린다며 서운해 하는 아이들에게 주먹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날, 시커먼 남자 아이가 큰 눈을 멀뚱거리며 큰 눈물방울을 쏟고 있었다. 평소 성실하지는 않아도 별로 호불호를 표현하지 않던 아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울었던 이유는 "답답하고 막연해요. 열심히가 뭔지 모르겠어요. 잘할 수 있다는말이 너무 싫어요."라는 넋두리 아닌 하소연이었다. 그 아이를 꼭 안아주고 말했다.

"괜찮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잘 하려고 하지 말아라. 힘들었는데 몰라줘서 미안하다. 말 안해서 진짜 몰랐다. 다음에는 맘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걱정은 어른만 하는 줄 알았던 시기에 아이의 눈물은 나를 한 뼘 성장시켰다. 어려서, 아직 잘 몰라서 결정할 줄 모르고 있을 거라 추측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괘씸하게 생각했다. 너 좋으라고 이렇게 성의있게 상을 차리고 있는데 왜 맛있게 잘 먹어주지 않느냐고 혼자 멋대로 생각했다. 어른이 맘대로 위한다는 구실로 보기 좋은 상차림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는 성장을 하고 있었고 차려지는 상을 바라보며 책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잘 먹지 못할까 봐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어른은 몰랐다. 상을 차리다 보니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어른이 만족스러운 상차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배려를 지나치게 하면 자만이 되는 것 같다. 상대를 위한다고 지나치게 생각을 하다가 화를 내게 된다. 감사할 줄 모른다고 서운함이 쌓이게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배려였을까 물어본다. 상대가 불편할까 봐 먼저 솔선수범한 배려는 원하고 배려 받고 싶었던 상대가 없기도 하다. 소통과 공감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일방통행은 상처를 안기기도 한다. 언제나 대화를 기본으로 상대가 원하고 바라는 감정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배려이다. 배려하는 입장에서 만족하기 보다 받는 쪽에서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여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부족하고 아쉽고 조금은 서운해도 쌓아두지 않고 굵은 빗줄기에 흘러 보낼 수 있는 성숙한 관계를 키워보는 게 좋겠다. 어렵고 불편하겠지만 작은 실천으로 습관을 만들어 보자. 서로가 보는 관계의 눈높이가 맞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운 여름은 충분히 덥게 보내고 시원한 가을을 상상해 보며 오늘도 아이를 위한 마음을 조금만 덜어 나를 사랑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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