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령의 수리수리] 3. <어느 날 내게 붉은 노트가> 쿠마리에 대하여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오순령 승인 2024.02.09 23:00 | 최종 수정 2024.03.12 23:53 의견 0
안느리즈에르티에 글 / 정미애옮김 / 다림 출판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기원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여신 탈레주를 인간이 범하려 했다가 여신이 화가 나서 다시는 이승에 내려오지 않겠다며 떠나버린다. 신의 나라인 네팔에서 신을 잃은 사람들은 신이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이에 여신이 나타나 본인이 직접 이승에 내려오지 않는 대신 초경 전의 어린 여자아이를 화신으로 삼아 너희를 보살피게 될 거라는 유래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존재하는 신이 바로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이다.

종교행사 때 행차하는 쿠마리 여신, 네팔의 쿠마리 신전을 구경하는 여행객

쿠마리는 '처녀'라는 뜻의 석가모니 샤카 성을 가진 여자 아이들 중에서 선정된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고 몸에 흉터가 없는 등 32가지의 까다롭고 무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며 대개 3세에서 6세 사이에 의식을 치뤄 통과하면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내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조용히 있어야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덜고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신호로 믿었다. ]

-70쪽-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을 뿐만 아니라 국왕을 인도하고, 왕권의 존속을 보장하는 여신이었으니까, 어떤 불행도 내게 일어날 리 없다고 믿었다.]

-82쪽-

[어느 날 내게 붉은 노트가] 주인공 마리의 할머니는 네팔 국민과 국왕이 모두 추앙하는 여신 쿠마리였다. 하지만 마리는 네팔이 아닌 프랑스에 살고 있다. 14살에 검은 머리와 구릿빛 피부를 가진 마리는 쾌활한 성격에 짝사랑에 푹 빠져 있는 사춘기 소녀이다. 친구들과 조금 다르지만 늘 당당하게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며 독학으로 네팔에 대한 관심의 폭도 넓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비협조와 모른다는 태도와 궁금증에 지친 상태에서 어느 날 붉은 노트를 받게 된다. 그 노트는 늘 궁금해 했던 나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마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노트였다. 그 붉은 노트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담겨 있었다. 바로 마리의 할머니인 사자니가 네팔의 여신이었다는 사실, 자신이 여신의 후손이라니... 이유없이 비협조적인 엄마 몰래 일기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제는 스스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몹시 힘들었다. 옷 끈을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

-84쪽-

하지만 여신이었던 쿠마리가 신전에서 생활하다 몸에 피를 보게 되는 어느 날 쫓겨나와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여신의 생활은 자동적으로 끝이 나게 된다. 돌아온 집에선 가족들에게 질병과 우환이 발생한다는 속설로 혼자 생활하지도 못하는 사자니는 끝내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가출을 하게 된다. 쿠마리 여신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대부분 성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신에서 성노예가 된 사자니 그리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난 마리의 엄마 또 마리까지...

[사자니 할머니를 망가트린 전통이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지 속에 몰아넣고,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 전통에 화가 났다.]

-103쪽-

["성노예의 손녀라고 부끄러워 하거나 여신의 손녀였다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

-104쪽-

프랑스에서 온 장 할아버지를 네팔에서 만나게 되면서 사자니 할머니는 5년간의 지옥과도 같은 성노예 생활 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마리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엄마와의 화해,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와의 재회를 향한 여행으로 마무리 된다.

["사자니는 괴로운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다. 용기 있는 여자였지. 일상에 몹시 서투르고, 힘들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네 엄마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집을 나갔을 때 사자니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으니까." ]

-113쪽-

["나하고 같이 프랑스에 가자. 결혼하자는 말이 아니야. 나를 사랑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네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기를 바랄 뿐이야."]

-136쪽-

["널 위해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냥 그런 거야. 어쩌면 신들이 나를 너에게로 인도했는지도 모르겠구나." ]

-136쪽-

전통이 무엇이길래? 쿠마리였던 사자니 할머니처럼 전통에 의해 희생당하는 가족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당나라 때부터 유행했던 전족으로 고통받았던 중국 여성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통은 소중하다. 그래서 역사의 한 부분인 전통은 지켜져야 하는 게 맞다. 아직도 세계에는 우리가 모르는 전통도 많고 악습 또한 많이 존재 한다. 그리고 악습은 악습인지 모르고 묵묵히 지켜지고 있다. 또 전통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습을 고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삶 전체를 통째로 뒤바꿔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참으로 불확실한 일인 것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테고,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하겠지. 어쩌면 둘 다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

-139쪽-

1000년 전부터 중국에 전해내려 왔었던 '전족'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알리고자 하는 핵심 역시 바로 이것일 것이다. 시대가 변화되면서 사회적으로 전통적 가치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어떻게 시대적으로 오래된 전통을 이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 우리의 생활들 가운데 훗날 전통으로 전해 질 만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만약 어느 날 문득 나에게 붉은노트가 전해진다면 갑작스런 상황에서 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문학적 감성을 중심으로 해서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나와 다르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마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담아 놓은 [어느 날 내게 붉은 노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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