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개미마을, 찬란한 골목의 시간
우리의 골목길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윤기경
승인
2024.10.08 14:59 | 최종 수정 2024.10.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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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개미마을, 찬란한 골목의 시간
홍제동 개미마을,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넘치는 곳.
그곳에는 일 보다 많은 골목의 향기가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찬란한 골목길 햇살이 내 사진 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우리는 더 이상의 옛 마을을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사람들은 남은 골목들을 철거하고 더 살기 좋은 아파트 나 빌딩을 가지려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옛 마을과 좁다란 골목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폭격 맞은 듯한 폐가와 공터에 심은 누추한 상추와 대파 냄새만 코를 움직거리는 마을. 그곳에 대중교통이라고는 딱 하나, 7번 버스에 몸을 싣고 나락에 빠질 듯한 마을을 사랑하러 왔다. 광풍은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마을과 골목 골목마다 내려두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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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지다
어느새 내 나이 육십을 넘겼다. 그만큼 세월도 늙었나 싶었으나, 그는 ‘벤자민의 거꾸로 가는 시간’처럼 점차 젊어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히 아파트를 올리고 도로를 내는지 모른다. 늙어가는 것도 있다. 아니 보관된다고 할까? 개미마을. 한때는 인디언 마을이라 불렸던 마을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성지가 됐다. 이곳에 가려면 7번 마을버스로만 유일하다. 영화 <7번가의 선물>의 배경이 되었던 마을에는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을 지경이다. 곳곳에 돌담의 옛집, 높다란 골목, 야채로 메운 공터 등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옛 마을을 잊지 못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추억을 만날 수 있었다. 한낮 사람들이 휘청이듯 발을 옮기는 건 사람들만은 대개 노인층이라는 사실이다. 지지 마라. 없어지지 말라. 하지만 마을은 석양을 받아 흙빛으로 지고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은 노파의 집에는 그녀의 애환만큼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시름시름 옛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록의 마을로 일어나,
수시로 개발계획 소식이 전해지는 마을. 반복되는 염치는 이곳 사람들은 물론 마을 전체를 병들고 지치게 했다. 불투명한 미래처럼 낡은 담과 연탄, 그리고 손님 없는 슈퍼가 내 사진기 안으로 들어왔다. 골목을 걷는 소리에 지척에 핀 꽃범의꼬리꽃이 경계하듯 바람을 빌어 두리번거렸다. 나비들도 이곳에서는 많지 않은 전령이 됐다. 꿀들을 빨아야 그들은 펌프와 담벼락에 내놓은 작은 편지통에 들어간다.
고양이 재롱이 싫다
인왕산 자락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마을. 모든 것이 시간의 미끄럼틀을 타는 듯했다. 칠십 년 전 전쟁의 포화를 피해 사람들이 들어왔고, 빈민의 굴레를 벗지 못한 사람들도 여기에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개미마을은 이제 가난이 아니다. 설혹 뭣이 없어 생활이 궁핍하다손, 마을에는 부드러운 들꽃씨가 빙산의 눈처럼 빼곡히 뒤덮였다. 도심의 사람들은 개발하면 되겠구나 싶지만, 사루비아가 피고 접동새가 우는 마을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양이가 배를 내밀고 구르는 길목에 여유로운 햇빛의 시간이 멈췄다. 언제까지 보고 싶다. 낡아도 멋진 마을, VIVA 개미마을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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