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순이삼촌 / 창비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무력 충돌로 인한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제주도 사람들이 미국과 연계하여 남과 북을 나누는 것을 반대하여 그것을 시위라고 생각한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가 경찰에게 지시해 제주도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게 된 사건을 말한다.

순이삼촌은 두 딸이 있고 배에 아기가 있었을 때 4.3사건이 발생하였다. 배 속에 있던 아기와, 순이 삼촌만 살게 되었다. 20~30년 후 순이 삼촌은 서울로 올라가 현기영 작가와 잠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다 현기영의 와이프와 오해가 깊어져 순이 삼촌은 자신의 고향이였던 제주도로 돌아가게 되었고, 자신의 집 마당 구석진 곳에 위치한 옹팡진 감자밭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만약 내가 현기영 작가 였다면, 많이 무섭고 슬펐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낼 엄두도 못 냈을거 같고, 만약 냈다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서야 냈을거 같다. 현기영은 무섭지 않았을까? 죽음을 직접 바라본 입장이라 더 무섭고 두려웠을텐데... 어디서 그 용기가 났을까? 용기가 아닌 운명이라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현기영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순이삼촌이 생을 마감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힘겨운 삶을 20~30년 넘게 살아왔는데 끝내 생을 마감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현기영의 아내와 오해로 인한 말다툼을 하였다고 한다. 순이 삼촌은 경찰이란 단어가 나오자 트라우마 때문에 공황장애가 왔고, 제주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이후 감자밭에서 목숨을 끊었는 데, 감자밭에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4.3 사건 때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어쩔수 없이 감자밭 뒤쪽에다가 시체를 묻었고 순이 삼촌 역시 30년의 힘겨운 삶을 이어왔지만 본인의 생은 30년 전에 마당 구석진 옹팡진 감자밭이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박시연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