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어린 시절은 평생 남아 그를 괴롭힌다

네이딘 버크 해리스의 책 은 한 컴퓨터 중년 프로그래머의 새벽 침실로로부터 시작한다. 잠을 자다 눈을 떴는데, 몸을 일으킬 수 없다. 말을 할 수도 없다. 새어나오는 건 비명뿐이다. 뇌졸중이거나 뇌경색의 심각한 징조다. 그는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간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그는 왜 그렇게 심각한 질병에 닥쳤을까?

소아과 의사인 네이딘 버크 해리스의 진단은 이러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그녀는 병원에 오는 모든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묻는다. “어릴 적 아이는 안녕하게 자랐는가요?” “다음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하지는 않았는가요?” 하나라도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면 아이는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적으로 아이는 허약하다. 천식이거나 저성장이거나, 학습이 어렵거나 언어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좀더 크면 아이는 불쌍한 아이에서 문제아로 선생님들에게 찍힐 수도 있다. 어릴 적, 말랑말랑한 두뇌가 마련해야할 마땅한 신체적-정신적-지적 방어체계나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불행을 당하면, 그의 이후 삶은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향은 평생을 두고 반복해 나타날 수 있다.

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에서 물었던 아동기 부정적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ACEs)의 10가지 질문 항목은 아래와 같다.

1. 정서적 학대(반복적)

2. 신체적 학대(반복적)

3. 성적 학대(접촉)

4. 신체적 방임

5. 정서적 방임

6. 가정내 약물남용(알코올중독자나 약물남용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거주)

7. 가정 내 정신질환(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 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함께 거주)

8. 어머니가 폭력을 당함

9. 부모의 이혼 또는 별거

10. 가정내 범죄행위(가족 중 투옥된 사람이 있는 경우)

불행한 점수로 치자면 금메달 감인 아이

여기 한 아이가 있다. 1974년생. 연천서 났지만, 상계동으로 이동했다가 철거를 당해 다시 연천으로 돌아간 집에서 살았다. 아비는 일하지 않았고 주구장창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엄마를 때렸다. 칼을 들고 엄마를 죽이려 할 때, 말리는 외할머니도 해친 적이 있는 망나니였다. 경찰서에서도 난동. 술에 절어있지 않은 때? 그때는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일하러 다니느라 소년의 두 살 위 누나와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 엄마는 아버지의 지속된 패악질과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소년은 늘 배가 고팠다. 지독하게 배고팠다. 집은 흙바닥, 아버지의 피가 묻은 찢어진 벽지, 밥상을 뒤엎어 엎질러진 김치찌개 국물로 얼룩진 방바닥, 겨우 곤로가 버티고 있는 부엌구석. 곳곳에 쥐들과 바퀴벌레들이 들끓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위 항목으로 점수를 매기자면 1번, 2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총 8점쯤이 됐다. 영화 <정돌이>의 주인공 송귀철이 열네 살까지 살았던 집의 풍경이었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귀철이는 1987년초, 겨울의 끝자락에서 고려대 정경대 행정학과생 서정만을 만난다. 1979년 12.12쿠테타를 일으키고, 1980년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통치시절이었다. 수배자 정만이 청량리역 근처를 배회할 때였다. 어떤 때 도망쳐야 할지, 어떤 사람에게는 다가가 자신의 작은 몸을 맡길지 귀철은 이미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늦은 밤, 정만에게 귀철이 다가가 처음 한 말은 이랬다.

“달이 참 밝아요.”

“뭐라고?”

“달이 참 이쁘게 밝다구요.”

그렇게 둘은 인연을 시작한다. 대학생 정만과 귀철(이제 정돌이로 불리게 될)은 첫 밤을 근처 심먀만화방에서 지샌다. 다음날 정만은 귀철을 데리고 고려대 정경대(민주광장이 보이는 학생회관)으로 데려간다. 고려대학교가 귀철의 새 집이 되는 순간이었다.

전국 3천여 개의 영화관중 여덟 개 정도의 영화관에서 영화 <정돌이>가 상영되고 있다. 1980년대 고려대학교에서 살았던 정돌이를 통해 그 시대 청년들의 민주화 운동이 조명된다. 그 시대를 살던 청년들의 초상도 거기 있다.


고려대를 자기 집으로 삼았던 아이 정돌이

“밥은 먹었니?” 귀철을 만나는 고려대 형과 누나들의 첫 마디요 인사였다. 보는 사람마다 귀철에게 이렇게 물었다. “밥은 먹었니?” 그렇게 귀철은 하루에 여섯 일곱 끼를 먹은 적도 있었다. 그동안 못 먹었던 밥을 몰아서 먹듯이. 귀철은 밥을 사양하지 않았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400~500원짜리 밥만 먹었던 것도 아니었다. 형들과 누나들은 그를 데리고 학교근처 식당에도 갔다. 고모집에서 마마집에서 엄마식당에서 그는 형들이 사주는 곰탕도 먹고, 소고기국도 먹었다. 귀철이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오징어 데친 것. 그 누나는 귀철을 데리고 자신의 집(그게 하숙집이었을지 자취방이었을지 모르지만)에도 데리고 갔다. 데친 오징어가 그에게는 난생 처음이었다.

위 책 《불행은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는 불행을 당한 아이들이 어떻게 소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모색이 담겨있다. 답은 여섯 가지. 영양을 취하고, 잠을 잘 자고, 신체활동(운동)을 적절히 하고,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명상을 하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친밀한 관계. 이 여섯 가지가 아이들-상처입은 어른으로 자란 어른들에게도-에게 필요한 전부였다.

귀철은 사랑 속에서 밥을 먹었다. 형들과 누나들은 깊은 관심을 귀철에게 쏟았다. 중학생이 된 나이지만 초등 저학년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던 몸은 사랑 속에서 서서히 그를 키워나갔다. 대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형과 누나들이었다. 북소리에 울려 학생회관으로 4층으로 올라간 그는 탈사랑우리 동아리에서 운명처럼 장구도 만났다. 거기서 탈을 쓰고 함께 공연도 했다. 장구나 북을 들고 시위대의 대열에도 섰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형들과 누나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이었다. 귀철에겐 그들이 가족이었다. 형들은 귀철을 정경대 마스코트 정돌이로 불렀다.

복사기기가 고장나, 모든 집회 유인물을 손으로 써야했을 때, 귀철도 대자보에 얼굴을 박고 글을 베끼고 있었다. 삐뚤빼뚤. 그걸 보던 형 하나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너 눈은 괜찮은 거니?” 망막색소변성증. 유전이었다. 귀철의 아버지는 자주 넘어졌다. 술에 취해서였지만, 개울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깬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귀철도 세상이 흐리게 흔들려 보였다. ‘다 그런 거 아니었어?’ 귀철은 안경점에서 정밀한 검사를 받았다. 난시. 형과 누나들은 학생회관 앞에 모금함을 놓았다. 정돌이 안경을 맞춰주자는 마음들이 거기 모였다. 귀철이 안경을 썼을 때, 처음 세상이 환히 맑게 제대로 보였다. 영화 <정돌이>이 포스터에 나온 그 밝은 웃음은, 그즈음 안경을 썼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사범대는 정돌이를 사범대에 맡기라고 했었다.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정돌을 데려가 씻기고 먹이고 재운 이들이 어린 대학생들이었다. 정돌보다 많아봐야 열 살이 안되는 형과 누나들. 88년엔 해남으로 농활도 함께 갔다. 비가 오는 들판에서, 진흙뻘에 빠진 정돌을 꺼내어 형들은 무등을 태워주었다. 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서 맘껏 웃으면서 정돌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하고 생각할 만큼 가슴이 벅찼다.

정돌은 부잣집에 양아들로 들어갈 기회도 있었다. 산사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고시를 보고 제길을 찾으라는 어느 대학생누나의 제안도 있었다. 정돌은 그 모든 걸 거절하고 자신의 집, 고려대에 머물렀다. 그는 그 즈음 창간한 한겨레신문을 새벽에 돌렸다. 낑겨 살던 형들은 겨울방학때면 흩어졌다. 이번엔 근처 고갈비 술집 ‘고모집’에서 먹고 자며 일을 도왔다. 귀철도 대한독립 아니 고대독립을 준비해나갔다. 그를 언제고 받아주던 탈춤패와 풍물패 등에서 배운 장구가 평생토록 그와 함께할 친구였다. 그는 끝내 독립했다.

이제는 꼰대로 불리는 1980년대 운동권에 대한 초상화 볼 수 있어

영화 <정돌이>는 고려대 민주동우회가 영화 제작의 중심에 있었다. 책 《정돌이》는 동우회가 초대한 영화 상영회때 보았다. 소설이지만, 실명 다큐멘터리라 해야 맞는 책이었다. 책 안에 영화 <정돌이>에서는 보지 못했던 더 많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렇게 살다죽어야만 했을까 싶은 귀철의 아버지. 말 못하고 살던 엄마, 끝내 아버지에게 돌아가 떡볶이를 해준 누나. 정돌에게 아이스크림과 잠자리와 만두를 줬던 남산 아저씨. 동생 삼아 정돌을 취직시켜 주고 함께 살았던 젊은 남녀. 1987 대선날, 구로구청 부정선거함 투쟁 진압과정서 그를 빼내준 경찰. 수도 없이 많은 ‘아빠와 엄마와 형과 누나’가 귀철을 스쳐갔다. 귀철이를 정돌이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 이들은 빼곡하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의 그 남자-첫장면, 어쩌면 죽었거나 살더라도 중풍환자가 될 운명이었던-는 살아남았다. 저자 네이딘의 남동생이었다. 불행을 겪은 아이가 모두 죽을 운명인 것은 아니다. 사랑으로 무장한 작은 손길들의 연대가 기적의 치유를 일으킨다. 또 있다. 외부에서 오는 불행이 아무리 모질어도, 그에 맞서는 한 인간 아이의 힘 또한 작지 않았다. 귀철의 예에서 보듯, 아이들은 그걸 헤쳐나갈 눈치와 힘도 역시나 갖고 있다.

귀철은 자신의 구원자를 찾아 스스로 손을 내밀고 말을 건냈다. “달이 밝네요.” 귀철은 살아남기 위해서였지만 늘 웃었고, 남의 집 마당도 자진해 청소해 주었다. 빵집 주인이 그에게 단팥빵을 건넨 이유였다. “정돌이를 잡으면 고대운동권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내부의 농담만이 아니었다. 그를 쫓아온 형사들을 따돌린 것은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던 귀철의 빠른 발이었다. 고마움을 입으면 그걸 잊지 않고 갚으려는 마음, 오랜 동안 잊지 않는 그 마음. 어려움에 처해도, 돈과 물질이 유혹을 해도 정돌은 ‘정도를’ 지키려고 했다. 그것이 정돌을 지켜준 또다른 힘이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이 되는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야겠다. “사랑은 어떻게 고통을 치유하는가?” 영화 <정돌이>, 책 《정돌이》는 그 두 개의 질문에 대한 긴 답이요 증거다.

정돌이는 2025년 2월 현재 지금 풍물패 미르를 운영하는 대표다. 그의 상계동 연습실에 가며 칼이 도마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단다.

"밥먹고 하자!"

장구 명인 정돌이 송귀철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살아았다.

귀철은 장가도 갔다. 아들 셋을 낳아서 기른다. 부인은 그의 장구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 그녀를 잘 가르쳐 대학에도 합격시킨 게 그 귀철이었다. 불행에도 따뜻한 마음들, 곧은 마음은 그걸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