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령의 수리수리> 4. <인형의집> 노라의 선택

인형의 집, 노라의 선택

오순령 승인 2024.02.09 23:10 | 최종 수정 2024.03.12 23:51 의견 0

노라의 선택

저:헨리크 입센 역:안미란 출판사:민음사

발행:2010년 06월30일 137쪽

인형이란? 참으로 기분 좋은 장남감이다. 아장 아장 걸어 다닐 때 늘 들고 다니던 얼굴 커다란 인형도 생각나고 10살 때 이 옷 저 옷 갈아 입혀 보았던 금발머리 마론인형도 생각난다. 또 20대는 자신의 몸보다 조금 작았던 곰인형에 감동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어른이 된 지금은 장식장에 놓여 내가 꺼내 주기만을 기다리는 인형까지 인형은 그 모습을 달리하며 늘 곁에 존재해 있었다, 바라보면 어느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소꼽친구처럼 말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오래된 친구 같았던 장난감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은지 오래이다. 또 징징되며 찾았던 인형 역시 언제 찾았는지 기억도 가물 가물하다. 아마도 인형 주인이 나이듦에 따라 어딘가에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뿐... 친구와도 같았던 때묻은 인형부터 좋은 추억 나쁜 추억 다 공유하고 내가 놀아주기만을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인형들이 하나 둘 생각이 난다.

만약, 어릴적 그 인형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내가 만약 인형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인형 취급을 당한다면, 진짜 요즘 흔히 말하는 대로 ***일 것이다.

지난날 ‘인형 같다'란 칭찬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듣고 싶어 했던 사춘기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인형이란 단어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시절의 나에게 행복과 비참함을 동시에 주었던거 같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감정이입이 쉬워서일까? 어쩌면 모두가 인형 같다는 말은 듣고 싶어도, 인형처럼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헨릭 입센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말이다.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

19세기 남성 중심사회 한 복판에서 “나는 인형이 아니예요.” 라고 외치며 집을 나온 주인공 노라의 선택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행복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요, 단지 즐거웠을 뿐이에요. 당신은 늘 내게 친절했지요.

하지만 우리 집은 놀이를 하는 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난 당신의 인형 같은 아내였지요.

아빠 집에서 인형 같은 아이였듯이요."

여성해방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던 [인형의 집] ‘노라’는 자신을 '종달새'라고 불러주며 믿고 의지했던 남편을 향한 진심과 함께 현모양처라 자부하며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말이다.

그런데 남편과의 불화스런 일로 남편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토록 사랑하는 가정에서 노라는 단지 엄마라는 역할과 아내라는 역할이 전부인 장식물이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너무도 행복했던 노라에게 지금의 자리가 그저 빈껍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빈껍데기로 살아가며 조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았을 충격은 19세기나 21세기나 시대별로 크게 다르진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도 아닌 19세기 여성으로 살아가던 노라는 지금 우리들보다 훨씬 대범한 행동을 한다. 그 시대에 있어선 용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모든 걸 상징하는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가출을 한다.

19세기 후반 사회적 배경안에서의 여성들에겐 투표권은 당연히 없었으며 정치에 의견 제시 역시 어려웠던 시기이다. 또한 노동 현장에서도 열악한 대우로 남성과 같은 일을 했어도 남성 임금의 50%에 해당하는 임금 밖에 받지 못했었다. 외출 역시 집과 가까운 거리가 아니면 곤란하였으며 관습적으로 여성에게는 외출이 허가되지 않았었다. 물론 여성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부유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 가정을 버리고 나가는 노라의 선택은 정말 당시엔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차게 박차고 가출 하는 노라

노라에게 집이란 아니 당시 여성들에게 가정이란 싫어도 좋아도 그녀들의 삶이자 인생의 모든 것을 상징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가출을 한다. 보장된 행복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없이 가출을 선택하며 ...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이렇듯 집을 당차게 박차고 나갔던 노라의 결말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의 권익 보호와 페미니즘(feminism)을 자연스레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름이 되었다. 공연 이후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코 적지 않은 여성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지만 여성 인격 존중이란 여전히 어색했던 당시 사회에서 극히 소수의 의견으로서의 쉽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 인습에 대해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찾아보자는 '노라이즘(Noraism)' 또한 [인형의 집]에서 유래하게 된다.

‘우리도 같은 상황에서 노라처럼 모든 걸 버리고 나갈 수 있을까?’ [인형의 집]의 너무도 확 열린 결말은 1876년 유럽에선 가히 당차고 황당한 극본이라 하여 공연을 저지할 정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말을 수정하라는 항의까지 평탄하지 않았음에도 공연은 시작되었고 그 첫 공연은 지금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당참의 주인공 노라는 140여년 전부터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고 말해 주고 있다.

​<인형의 집>독후감 글쓰기 TIP!

↓아래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나만의 생각과 함께 독후감을 써보세요!

1. 현모양처인 노라가 가출? 돈 잘버는 남편, 사랑스런 아이들을 둔 노라의 가출은 현명한 선택이었을까요?

2. 노라의 삶은 과연 결과적으로 어떤 삶이라고 할 수 있나요?

3. 노라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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